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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의 올바른 유래-첫번째 '기모노의 역사'

알고싶어 2021. 6. 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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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의 구성

기모노(きもの)

일본인의 작은 체구를 가리기 위해 겹쳐 입기의 미학 기모노는 한 장으로 된 사각형의 천을 몸에 감고 오비로 멋을 낸 일본의 전통의상이다. 서구화와 함께 일본인들조차 입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전통을 계승하려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기모노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모노의 역사

1. 원시시대(∼561년)
원시시대의 복장은 하니와(옛날 무덤의 주위에 묻어주고 찰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동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여성의 의상은 키누모(衣裳), 남성은 키누바카마(衣袴)라는 옷을 입었다. 웃옷의 왼쪽 여밈과 허리에 두른 띠가 특징이다.

2. 아스카 · 나라시대(562년∼793년)
불교가 전해지면서 당나라 풍의 복식과 염직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양 소매가 긴 단기누(短衣)를 입고 모(裳 · 옛날에 귀족이 정장을 입을 때 하카마 위에 입던 옷)를 한 장 혹은 두 장을 입었다. 그 위에 세시(背子)라는 조끼와 같은 것을 입고 어깨에는 히레(比礼 · 귀부인이 정장을 입을 때 어깨에 드리운 길고 얇은 천)라는 스카프를 걸쳤다. 남성은 머리에 관을 쓰고 목닫이의 아게구비(盤領)의 긴 쪽을 입고 허리에는 허리띠를 매고 속바지를 입었다.

3. 헤이안 시대(794년∼1191년)
귀족사회는 명주, 서민사회는 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던 시대로 일본의 풍토에 맞는 기모노가 만들어졌다. 여성은 쥬니히토에(十二単 · 옛날 여관들의 정장)나 코우치기(小うちぎ · 상류 계급 여성의 약식 예복), 남성은 소쿠다이(束帯 · 천황 및 문무 백관이 정무를 볼 때나 의식 때 입던 정장), 노우시(直衣 · 예 귀족의 평복), 카리기누(狩衣 · 귀족들의 평상복으로 에도 시대에는 무늬 있는 천으로 만들어 예복으로 입기도 함)라는 옷을 입었다. 서민들이 명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은 허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4. 가마쿠라 시대(1192년∼1333년)
검소한 생활, 활동적인 옷을 입었다. 여성은 키누바카마(衣袴 · 명주로 만든 하카마), 키누카즈키(衣被姿 · 명주로 만든 귀부인이 나들이할 때 머리로부터 덮어 쓰던 옷), 츠보쇼우조쿠(壷裝束 · 옷의 자락을 항아리처럼 늘어뜨리고 한 가운데를 상투와 갗이 옻칠을 한 상류사회의 여자용 삿갓)를 쓴 모습이었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直垂 · 소매 끝을 묶는 끈이 달려 있고 紋章이 없으며 옷자락은 하카마 속에 넣어서 입음), 카리기누, 옷깃은 타리구비(垂領 · 좌우 옷깃이 젖히는 것을 막기 위해 가슴 부분에 단 끈이 달려 있음), 소매는 츠유(露)라 하고 소매 끝을 끈으로 장식했다.

5. 무로마치 시대(1334년∼1573년)
지금의 기모노의 기초가 된 무로마치 시대는 네덜란드나 포루투갈 사람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사라사(更紗 · 인물, 조수, 화목, 또는 기하학적 무늬를 날염한 베, 무명, 비단 또는 무늬), 벨벳, 공단 등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성은 고소데가 겉옷이 되고 고소데바카마(小袖ばかま · 하의)나 고소데유마키(小袖湯巻 · 속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되고 옷자락을 길게 한 나가바카마(長袴)에 집안의 문장을 넣기 시작했다.

6. 아즈치 무로야마 시대(1574년∼1602년)
지금의 기모노 형태를 성립시킨 시대. 짧은 소매 형식의 의복이 완성되었다. 히젠노쿠니(肥前の国 · 옛 지방의 이름으로 사가현과 나가사키현의 일부 지방), 나고야에 조선에서 꼰 끈의 기술이 전해져 나고야오비(名古屋帯 · 양끝에 술을 붙인 둥근 실 띠로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유행했으며 남녀가 다같이 사용)가 탄생했다. 그것을 허리에 여러 겹으로 돌려 묶었는데 기생이나 온천, 여관의 하녀들이 주로 입었다. 여성은 고소데와 기모노와 오비,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됐고 평복으로는 카미시모[동풀이 센 가타기누(어깨와 몸통만 있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고소데 위에 받쳐 입었음)]와 하카마가 한 빛깔로 염색된 에도 시대에는 무사의 예복으로 사용됐다.

7. 에도시대(1603년∼1867년)
오비의 폭이 점점 넓어졌고 묶는 법도 다양해지게 됐다. 일반 서민 여성은 에리모토(襟元 · 옷깃 언저리)나 에몬(衣紋 · 깃섶)을 느슨하게 해서 요염하게 입었다고 전해진다. 남성은 무사의 예복으로는 카미시모를 입었고 하오리(羽織)를 예복으로 입게 됐다.

8. 메이지 · 다이쇼 · 쇼와시대(1868년∼1989년)
메이지 시대는 여성들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남성은 양복을 입기도 했지만 정장은 기모노였다. 여성의 정장은 쿠로치리멘(縮緬 · 오글쪼글한 비단), 쿠로하부타에(羽二重 · 견직물의 일종으로 얇고 부드러우며 윤이 나는 순백색 비단)의 쿠로토메소데(留袖 · 예복으로 소매 길이는 보통이며 무늬와 문장이 달려 있음)를 입었다. 남성의 정장으로는 검은 문양의 하오리와 하카마였다.
다이쇼 시대에는 양복이 유행하고 여성들도 양장을 입게 됐다. 기모노에 있어서는 화려한 하오리가 유행했다. 또, 남성은 오오시마츠무기(大島紬 · 오오시마에서 나는, 붓으로 살짝 스친 것 같은 무늬가 많이 있게 짠 명주), 메이센(銘仙 · 꼬지 않은 실로 거칠게 짠 비단) 명주 등이 유행했다.

기모노의 종류

후리소데(振袖)
후리소데는 미혼 여성의 제 1예복으로 정해져 있고 가장 화려한 기모노로 에도 시대까지는 남녀 모두 입었지만 지금은 미혼여성만 입는다. 에바하오리(絵羽羽織 · 큼직한 그림 무늬가 들어있는 덧옷) 모양이며 무늬가 바느질 자리를 따라 연결되어 전체가 한 장의 그림처럼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토메소데(留袖)
기혼여성의 제 1예복으로 쿠로토메소데(黒留袖)와 이로토메소데(色留袖)가 있다. 쿠로토메소데는 상반신에 무늬를 넣지 않은 옷단에서 옷깃까지 에바하오리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상반신은 소메누키(染抜 · 무늬 부분만 바탕 색깔로 남기고 다른 부분은 염색하는 것) 다섯 문장을 넣는다. 이로토메소데는 바탕이 컬러로 되어 있다. 문양 수에 따라 착용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특징으로 화려한 바탕색과 격조를 살려서 사교용으로도 입을 수 있다.

호우몬기(訪問着)
기혼, 미혼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기모노로 에바하오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사교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로무지(色無地)
오글쪼글한 비단이나 무늬가 들어간 옷감에 색을 넣은 전체적으로 문양이 없는 기모노를 말한다.

츠케사게(付け下げ)
어깨나 팔 옷단 등에 물들인 무늬가 앞길, 뒷길에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된 것을 츠케사게라고 한다.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기모노로 호우몬기와 구별이 쉽지 않은데 가봉한 상태에서 문양을 넣은 것이 특징으로 만들 때 상하가 바뀌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 넣는다.

코몬(小紋)
코몬이란 자잘한 무늬를 말하는데 염색한 기모노의 경우 카타조메(型染 · 型紙를 무늬를 박아 염색한 것)로 같은 문양이 전체에 연속해서 놓인다. 사교용 기모노이지만 여러 가지 변형이 있다.

유카타(浴衣)
목욕을 한 뒤 입거나 여름철에 입는다. 무명 홑옷으로 하나비가 많이 열리는 여름 유카타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목욕을 할 때 입은 것으로 내의로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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